season 1.
#1 개미는 뚠. 뚠. 오늘도 뚠. 뚠
베이스 라인은 붐. 붐. 심장은 쿵. 쿵. 킥 드럼은 둥. 둥.
개미는 뚠. 뚠. 오늘도 뚠. 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 개미들만의 사탕공장에서요. 그리고 그곳에는 더듬이 꺾인 개미가 있었답니다. 고작 더듬이 하나지만,고작 더듬이 하나 덕분에 6104호에 사는 더듬이 꺾인 개미 6104호를 모르는 개미가 없었죠. 아! 개미들은 기숙사 방 번호가 곧 이름이 되거든요. ‘24601호!, B612호! A113호!’처럼요. 어제와 똑같은 검은색 옷을 입고 어제의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서 어제의 어제의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내는 이곳, 사탕공장에서 6104호에 사는 개미는 뚠. 뚠. 오늘도 뚠. 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답니다.
#2 내일도 내 일을 해야 하니까! 내일의 내일도 내 일을 해야 하는걸
개미들만의 사탕공장에도 개미들만큼 새까만 옷을 입은 밤이 찾아왔어요. 꼭, 어제처럼요. 개미들에게도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일만이 남아있답니다. 뚠. 뚠. 오늘의 마지막 일은 바로,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잠을 자는 일이에요! 개미들에게는 잠을 자는 것도 일이거든요! 뚠. 뚠. 자기 이름과 같은 이름의 방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있답니다. 뚠. 뚠.
하지만, 6104호에 사는 더듬이 꺾인 개미 6104호는 다른 개미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6104호 창밖으로 걸려있는 새까만 밤과 하얀 별사탕들을 올려다보곤 했죠.
‘그래, 저어렇게 작은 친구들도, 저어렇게 뚠. 뚠. 일을 하고 있는걸’
‘저어렇게 높은 곳은… 무서울 텐데… 정말 씩씩한 친구들이야’
까마득한 밤에서 용감하게 일을 해내는 작은 친구들은 심심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개미 6104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어 주었어요.
‘그래… 나도 내일도 내 일을 해야 하니까… 내일의 내일도 내 일을 해야 하는걸… ?’
6104도 오늘의 마지막을 시작하기로 했답니다. 뚠. 뚠.
‘꼬맹이들 안녕… 나도 너희들처럼 일하러 가야 하거든…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해…'
까먹지 않고 별사탕 친구들에게 밤인사도 나누었죠. 뚠. 뚠.
#3 6104호 안에서 무언가 자꾸자꾸
🎶베이스 라인은 붐! 붐!🎶
6104호가 6104호의 창을 닫으려는 그 순간, 창을 통해서 6104호의 바로 위층으로부터 소리가 잔뜩 들어왔어요.
그렇게나 순식간에 6104호를 가득 채워버렸죠.
🎶심장은 쿵! 쿵!🎶
6104호는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였어요. 6104호는 6104호 안에서 무언가 자꾸자꾸 점프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쿵 쿵 6104호의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있었어요.
🎶킥 드럼은 둥! 둥!🎶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었어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어요. 무엇보다도, 분명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죠. 정말 이만큼이나 차올라도 되는 것일까 할 정도로 6104호를 채워버렸어요. 이대로라면 6104호는 자기 자신만큼이나 까만 밤, 그곳 친구들에게까지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이곳은 끝없는 일들이 있는 곳이에요. 뚠 뚠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어느 날일 뿐인, 일뿐인 곳, 바로 그곳이요. 그런 이곳에 보도 듣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름을 몰라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알 수 있죠. 더듬이 꺾인 개미 6104호는 분명 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4 가쁜 것이 아니라, 기쁜 것이었어요!
6104호는 6104호의 문을 박차고 나와 달렸어요. 어찌나 세게 열었는지, 6104호의 문이 콩! 소리를 냈죠. 6104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가 보여주는 대로콩콩! 달렸어요.
잠시도 다리를 쉴 수 없었어요. 6104호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죠! 뚠! 뚠! 콩콩 가까워질수록, 쿵쿵 소리가 선명해질수록, 6104호의 기억도 선명해졌어요.
소리는 6104호를 7104호의 문 앞으로도, 예전의 그 장면으로도 데려가 주었답니다.
🎶차오르는 숨! 숨!🎶
땡. 숨이 가쁜 것이 아니에요…! 차오르는 것은 숨이 아니라 다른 것이거든요.
가쁜 것이 아니라, 기쁜 것이죠…!
6104호는 가득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답니다.
#5 개미친…구야. 재미. 나에겐 그게 가장 중요해.
소리에 눈이 가려진 6104호는 그만 7104호의 문에 콩! 박치기를 해버렸어요. 콩콩콩콩…
6104호가 더듬이 사이의 쓰라림을 다 쓰다듬기도 전에 7104호의 문이 열렸어요. 덜 콩.
6104 아…!
가득 벅차 있는 6104호에게서 반가운 탄성이 튕겨 나왔어요.
6104 너…! 짱이! 짱이맞지?!
6104호가 7104호의 문을 연 베짱이에게 말했어요.
짱이 난 짱이지, 그런데… 너?
6104호는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죠.
6104 응! 나…! 나야!
짱이 그 ‘너’ 말고. ‘너’? 내가 널 아나?
그러나, 그 목소리는 돌만큼이나 딱딱했죠.
…6104 아…? 그러니까… 내가…아니, 제가…그러니까 우리는…전에
현실로 돌아온 더듬이 꺾인 개미가 더듬더듬 말했어요.
짱이 뭐라고? 어디 개미가 기어가나… 차라리 그 소리가 더 크겠어, 누가 보면 내가 낫이라도 든 사마귀인 줄 알겠다. 얘
6104 아… 저는 그냥… 소리를 따라 온 거예요.
짱이 그러시겠지,요 하루 사이 골백번이고 들었으니까, 너도 ‘조.용.히.좀.시.끄.럽.다.’고 온 거잖아? 틀려?
돌만큼이나 딱딱한 것이, 차가워졌어요. 얼음 같았죠. 돌 만큼
6104 아니에요! …그게 저는… 반가워서… 제 키만큼이나 좋아서… 기뻐서…
짱이 ?기뻤다고? 시끄러운게 아니고? 넌 개미잖아…? … 개미 맞는데?
6104 …개미 맞아요. 그런데… 역시 저는… 조금 이상한 개미인가 봐요… 저 혼자만 한 쪽 더듬이가 꺾여있는 것도 이상하고...
짱이 오, 진짜 꺾였어… 아! 그래서 좀 들을 줄 아는 거네, 하던 말이나 계속해 봐. 내 노래가 너무 좋고 완전 기쁘고…? 또?
6104 아… 저는 그냥… 짱이도, 짱이의 노랫소리도… 반갑고 좋고 기뻐서… 정말…….
짱이 …? 중요한 게 빠졌는데?
6104 …로요…? 정말로요…
짱이 개미친…구야. 재미. 나에겐 그게 가장 중요해.
짱이는 6104호를 친구라고 말했어요.
6104 재…미요…?
짱이 서있지 말고 일단 들어올래? 재미있어, 그런데 왜 나는 널 기억을 못 할까?
짱이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어 턱을 잡고 곰곰히 생각했어요.
짱이 뭐, 이제 알면 되니까.
짱이는 6104호의 앙증맞은 주먹을 잡고 7104호 안으로 당겼어요. 웃고 있었어요. 얼음은 순식간에 물이 되어 스며들었죠.
#6 나는 여행을 다니고 있어, 아직 모르는 재미들이 너무 많거든
짱이 일단 여기 앉아. 좀 지저분하지?
6104호는 앉는 것 대신, 7104호와 짱이를 번갈아가며 보았어요. 짱이가 말한 ‘여기’는 자세히 보아야 보였거든요. ‘방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라는 말이 둥둥 떠올랐어요.
짱이 와인,괜찮지?
6104 네?!…그게…아직 근무 시간이라… 사실 잠을 하고 있어야 해요….
짱이는 대꾸하지 않고 잔을 채웠어요. 재미없는 농담이라 생각했거든요.
6104 저기…그… 재미는 어디 있어요?… 어떤 색이에요…?
짱이 …글쎄? 네가 좋아하는 색이면 그만 아닐까? 네 재미인데 네가 마음대로 정하면 되는 거지.
7104호를 정리하던 짱이가 다시 '얼음!'하고 멈췄어요.
짱이 ?잠깐, 방금 재미없다고 비꼰 거지? 나 그렇게 들렸어.
6104 네…? 그게 무슨… 재미를 찾고 계신 것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도와드리고 싶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했잖아요…
짱이 …설마 너 "재미"를 정말 모르는 거야...? 색깔이 어떻냐느니… 찾아준다느니… 재미가 무슨 여기저기 붙이는 포스티잇도 아니고…
6104는 대답하지 못했어요. 꺾인 더듬이도 새삼 시무룩해 보였죠.
1초 2초 3초... 길지 않은 정적은 그 어떤 대답보다 짱이에게 많은 것들을 대답해 주었어요.
짱이 …착하네. 재미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도우려 하고… 그냥 개미라 그런 건가? 아무튼 고개 들어, 원래 모르는 게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세상이야.
그래서 나는 여행을 다니고 있어, 아직 모르는 재미들이 너무 많거든, …… 아!
듣기 좋은 속도로 말을 이어가던 짱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어요. 둘 사이에 놓은 잔들은 작은 바다가 되어 와인빛 파도가 일었죠. 짱이는 벽으로 비틀비틀 다가가 벽에 붙어있던 종이 하나를 떼어내 돌.돌. 말아서는 6104호에게 내밀었어요.
#7 길을 잃었을 때 필요한 게 뭐야? 모르는 걸 알고 싶을 때는?
6104 …? 혹시 이게… 그 재
짱이 지도야. 다 쓴 걸 선물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안 받아? …팔 떨어져 나.
짱이의 말에 6104호는 냉큼 지도를 받았어요. 짱이의 팔이 떨어지게 둘 순 없었거든요.
6104 …지도…?를… 제가… 저는… 재미를…
짱이 내가 재미를 찾아다닐 때 썼던 지도.인데? 더듬아, 길을 잃었을 때 필요한 게 뭐야? 지도. 모르는 걸 알고 싶을 때는? 지도. 넌 길을 잃었고, 알고 싶은 모르는 것도 있어. 그러니까 받아. 이젠 이건 네 거야, 내가 줬으니까. 이면지로 쓰든, 나처럼 네 재미를 찾는 여행에 쓰든 Find Your Fun, Yourself, okay? 일단 이름… 아, 나 네 이름을 모른다. 더듬이.
6104 …더? 듬이…… 제 이름은 6104호에요….
짱이 6104호가 이름이라고…? 개미답다면 개미 다운 이름이긴 한데...재미를 찾으러 가는 지도인데, 이런 재미없는 이름이 가당키나…
지도에 아무렇게나 6104호의 이름을 갈겨적던 짱이가 또 한번 ‘얼음!’ 하고 멈췄어요.
짱이 웁스… 쏘리. 이름 가지고 놀리는 거 아니라던데… 그치?
6104 괜찮아요. 저는 제 이름이 싫지도 좋지도 않거든요….
짱이 그게 무슨… 이름은 중요해. 내가 괜히 짱인 줄 아니? 음… 더듬이? 더듬이. 괜찮다. 일단 6...어쩌고보다는 훨씬. 안 그래?
6104 …더듬이는 좀… 더듬이는 모두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게다가….
짱이 일단'호'부터 빼자. 무슨 죄수번호야?
그 순간 짱이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어요.
#8 재미지다…?
짱이 그럼 GIDA는 어때? 안 보고 적었는데, 그렇게 적혀있네, 더듬이는 완전 귀여운데, GIDA는 완전 재미지다.
6104 재미지다…? … 좋아요! 그렇게 할래요! GIDA… GIDA…
친구가 가장 중요한 것을 담아 지어준 이름, 6104호는 그 이름을 혹여나 잊을까 몇 번이고 울려보았어요.
‘GIDA… GIDA…GIDA…’ 그렇게, 6104호는 GIDA가 됐답니다.
6104
GIDA 그런데… 저는 드릴 것이... 없는데…
지도도 이름도 선물 받은 GIDA도 짱이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짱이 재미있었으니까 됐어. 개미치고... 아니지, 개미라서 재미있었나? 막상 그 개미는 재미를 모른다고 하고… 이곳 개미들은 일하는 것이 재미일 텐데… 넌 그게
아닌거 아냐?
GIDA …재미…? 일…?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제가 고장 난 줄 알았어요…….
짱이 고장 난? 거, 장난이 아니었겠네……. 자 봐, 나는 매일 하는 것처럼 노래나 부른 건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너도 내가 만났잖아? 이래서 여행을 못 끊어. 나는 여행이 제일 재미있거든!
짱이는 베시시 웃으며 말했어요. GIDA는 가만히 짱이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즐겁다.는 저런 얼굴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짱이 꼭 마무리 지어야 할 일도 있고……. 취했나, 나 말 너무 많다… 자야겠어. 더듬아 이만 돌아가.
짱이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GIDA의 등을 떠밀었어요.
GIDA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더듬이가 아니라 GIDA에요…!
짱이 그래그래. 더듬아. 어차피 다시 만날 거니까...
GIDA …다시요?
GIDA의 등을 떠밀던 짱이가 GIDA를 도로 다시 돌려 세웠어요. 그러고는 마주보기 좋게 얼굴을 낮춰 눈을 보고 말했어요.
짱이 서로, 따로, 여행을 다니다가 정말 우연히 우리가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일 것 같아??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아?
정말이었어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죠. 붐붐, 쿵쿵, 둥둥. 꼭, GIDA와 짱이를 만나게 해준 그 소리들처럼요.
#9 FYFY!
더듬이 꺾인 개미가 있었어요. 고작 더듬이 하나지만, 고작 더듬이 하나 덕분에 옛 친구와 다시 한번 더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옛 친구는 개미에게 재미진 이름을 선물해 주었죠. 개미 6104호는 개미GIDA가 되었답니다.
GIDA는 6104호에게 인사를 했어요. ‘그 동안… 너무 고마웠어’ 방을 보면 마음이 보이거든요. GIDA는 6104호를 보고 자신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었죠.
또, GIDA는 6104호에게도 인사를 했어요. ‘그 동안… 너ㅁ.. 고…ㅅ…’ ...어디 개미가 지나가나봐요...
GIDA는 친구가 다녀온 여행길을 거꾸로 여행하기로 결심했어요.
새까만 밤마다 별을 올려다 보던 GIDA의 눈은 새하얀 별사탕 친구들만큼이나 빛이 났죠.
잠시도 다리를 쉴 수 없었어요! 쉬고 싶지 않았죠! GIDA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일거에요! 뚠! 뚠!
자기 키보다도 훠얼씬 더 차오르는 기쁨에, GIDA는 까치발을 들고 달렸답니다! 뚠! 뚠!
